정의당의 붕괴와 진보당의 약진…대비된 두 진보정당

ai 투자 : 이번 총선의 안타까운 특징 중하나는 사회의 진보와 변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패배를 기대하며 들떠있는 속에서, 일부 진보정당들은 패배를 예상하며 우울한 분위기 속에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진보정당이 녹색정의당이고, 총선 결과는 실제로 심각한 추락으로 나타났다.

카지노 : 지난 10년 동안 유일 원내 진보정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10% 가까운 지지로 6석을 지켰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진보정당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던 비례 투표에서 3%의 벽을 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역구에서는 1명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권영국 변호사 같은 진보의 대표적 인재도 국회로 보내지 못했다.

4번이나 연임하며 진보정치의 대표적 지도자로 성장해 온 심상정 의원마저 낙선하고 말았다. 이것은 녹색정의당은 물론 독자적 진보정치의 발전을 응원해온 모든 이들에게 매우 안타깝고 서글픈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진보적 가치를 지키며 오랫동안 곳곳에서 헌신하던 사람들의 좌절을 뜻하기 때문이다. 녹색정의당이 대변하던 기후정의와 여성·소수자 인권의 가치에도 타격이다.

더 문제는 무엇을 탓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선거제도 때문이다? 양당 구도 때문이다? 사표 심리 때문이다? 제3지대 신당들 때문이다? 조국혁신당 때문이다? 그런 변명으로만 빠져나가기도 어렵게 녹색정의당의 지지율은 선거 기간 전부터 이미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해서 그것이 선거 결과로 그대로 이어졌다.

선거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정의당의 지지 기반은 붕괴했고, 지역구는 민주당을 찍어도 비례는 정의당을 찍던 사람들도 거의 다 떠났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한계를 넘어선 진보정치의 필요성은 여전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번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고 교훈을 배우는 일이다. 멀리 보면 민주노동당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지만, 지금의 정의당은 2013~14년의 종북몰이와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과정에서 등장했다.

그 시기에 ‘종북’으로 낙인찍힌 통합진보당과 선을 그으면서 정의당이 출발했다. 당시에 심상정 의원은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헌법 밖의 진보”라고 규정하며 선을 그었고,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도 당론으로 찬성했다. 씁쓸하게도 조선일보는 ‘진정한 진보’라고 정의당을 추켜세웠고,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정의당은 민주당과 야권 선거연합을 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았다.

2016년 촛불 이후에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되면서 정의당이 진보적 야당으로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더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성평등과 기후정의 의제를 강조한 것도 필요했다. 하지만 2019년 ‘조국 사태’ 때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복합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핵심은 촛불항쟁에서 시작된 변화를 중단시키고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기득권 우파의 반동적 시도였다.

이에 맞서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거대한 촛불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정의당은 여기에 등을 돌려버렸다. ‘조국몰이’와 ‘윤미향 마녀사냥’, ‘이재명 죽이기’ 등에서 정의당은 거듭해서 검찰 권력과 족벌언론의 프레임에 따라가기 시작했고, 민주당보다 더 철저하고 강력하게 기득권 카르텔에 맞서는 진보 야당을 기대하는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기득권 우파와 검찰-언론 카르텔이 결국은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키며 권력을 되찾아간 후라도 정의당은 방향을 제대로 찾아야 했다. 이제 민주당은 더 이상 집권여당이 아닌데도, 정의당은 거듭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방향에만 집착했다. 윤석열 정권과 정면 대결하기보다는 기계적 양비론을 펴다가 윤석열 검찰의 이재명 체포동의안에도 찬성했다. 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민주당과의 관계’에만 시야가 가두어진 결과였다.

결국, 정의당은 스스로 윤석열 정부나 검찰-언론 카르텔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미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서 전통적인 진보 지지층도, 민주당 왼쪽에서 진보정당으로 이동할 수도 있던 지지층도 다 잃고 말았다. 당원 수 급감, 당비 수입과 재정 악화, 지지율 추락이라는 ‘3중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미 2022년 지방선거 때 정의당 지지율은 4%에 그쳤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의 위기와 혼란은 더 심해졌다.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방향에 집착하며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류호정, 박원석, 조성주)은 “민주당의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면서 아예 정의당을 떠나서 이낙연, 이준석 등과 손을 잡고 ‘제3지대 신당’을 만들었다. 정의당은 쪼개지다시피 했다.

지난해 연말에 정의당이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 등과 함께하는 진보 선거연합을 추진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고 진보정치 지지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품게 했다. 이것은 진작에 필요한 일이었지만, 종북몰이와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과정에서 깊어진 불신과 갈등에 가로막혀 있었다. 정의당의 위기감이 외면하던 이 과제를 스스로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정의당은 자신들을 플랫폼으로 한 연합정당을 고집하고, 진보당은 민주노총을 플랫폼으로 한 연합정당을 고집하면서 진보 선거연합은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유일 원내정당의 자리를 독차지해 온 정의당의 포용하고 양보하는 태도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정의당은 녹색당과 소(少)진보연합을 해서 총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올해 2월에 뒤늦게 연동형 선거제 유지를 선언하며 비례연합 정당을 제안했을 때 정의당은 그것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과 선 긋기’가 절대적 원칙처럼 굳어졌을 뿐 아니라 녹색당과 통합을 통한 총선 대응이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후보 단일화는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

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 정당과 경쟁 관계이기에 녹색정의당은 더욱더 민주당을 비판하고 차별성을 드러내는 선거운동을 했다. 윤석열 정권에 가장 앞장서 맞서 싸우는 정당이라는 인식은 만들어지기 어려웠고, 이것은 윤석열 정권에 엄청난 분노와 심판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이것이 오늘 나온 총선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정의당에서 벗어나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의 ‘제3지대’를 찾아간 정치인들도 처참한 결과를 얻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민주당과의 경쟁 관계나 대립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더 빠르고 강하게 윤석열 정부와 싸우겠다’고 약속한 조국혁신당은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 진보정당들의 위기와 분열 속에서 민주당의 왼쪽 공백을 차지한 것은 조국혁신당이 됐다.

결국, 이번 총선 결과는 ‘2019년에 조국 장관 임명을 찬성해서 정의당의 위기가 왔고, 진보정당은 무조건 민주당과 단절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의 허구를 드러낸다. 단순히 민주당을 반대하고 선을 그으며 ‘진보정당이 대안이니 여기로 오라’고 선언하는 방식으로는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을 통한 개혁과 진보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깎아내릴 게 아니라, 그들이 진보정당의 기반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적절한 동맹과 전술을 택해야 한다. 기득권 우파를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하고, 심지어 민주당 오른쪽의 민주평화당과도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했던 노회찬 의원의 경험과 기억이 계속 이야기되는 이유다.

정의당의 추락을 근거로 ‘기후정의와 성평등, 노동 의제들이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평가해서도 안 된다. 기후정의와 성평등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어떤 정치세력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의제가 돼 있다. 국민의힘도 이번 총선에서 기후 공약과 후보를 내세웠고, 막바지에는 ‘민주당은 여성혐오 정당’이라고 공격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처럼 도덕적 낙인과 정략적 공격의 무기로만 활용하려는 시도에 끌려가거나, 기후정의와 성평등을 위한 투쟁을 검찰·언론 개혁을 위한 투쟁과 대립시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 반노동자적이고 여성차별적인 정권이다. 긴밀히 연결돼 있고 교차하는 이러한 과제와 투쟁들은 얼마든지 결합시킬 수 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은 지역구와 비례를 합쳐서 3석을 얻을 수 있었다. 진보당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통합진보당이 2014년에 박근혜 정부에 의해서 강제 해산된 이후에 진행된 10년 동안의 지독한 탄압과 고립을 뼈아프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치는 소멸했다’는 평가가 안 맞는 이유다.

그동안 진보당(민중당)은 ‘종북’으로 낙인찍혀 사회 전체뿐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따돌림당했고, 허허벌판에서 찬바람을 맞았다. 특히 진보당 후보가 울산 북구뿐 아니라 부산 연제에서도 경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이기고 본선에서는 국민의힘 후보를 턱밑까지 쫓아간 것은 인상적이다.

기성 양당이 아닌 진보정당 후보도 얼마든지 노력과 능력을 통해서 지역구를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종북몰이 마녀사냥꾼들이 진보당의 부활을 보며 당황하고 속 쓰려할 것을 생각하며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진보당의 이번 총선 성과는 비례연합 정당에 들어가고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해서 가능했다.

이런 타협은부작용과 후폭풍도 낳았다. 진보정당으로서 독자성은 어느 정도 흐려졌고, 민주당의 부당한 요구 때문에 일부 후보들을 사퇴시켜야 했다. ‘민주당 위성정당에 들어간 진보당을 민주노총의 지지 정당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비난 속에서 진보정당들의 불신과 갈등도 커지고 있다. 진보당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과 과제가 남았다.

이것이 뼈아픈 이유는 총선 이후의 연대와 투쟁에 부정적일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종북몰이'와 이간질에도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은 이미 총선 기간에 ‘진보당은 종북주사파이고 민주당과 이재명은 숙주’라는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총선 패배를 뒤집기 위해서도 이런 공격은 더욱 거칠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공격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종북몰이에 굴하지 않고 이번 선거연합에서 진보당을 배제하지 않은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총선 이후에도 민주당뿐 아니라 모든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노동운동 단체들은 예상되는 종북몰이에 함께 맞서야 한다. 서로 정치적 노선과 진영이 다르다고 침묵하고 외면하며 결국 진보정치 공동의 기반을 허무는 지난 10년간의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서 진보당은 완전한 연동형 비례 투표제와 결선 투표제 등을 도입해서 민주당에 의존하지 않는 진보정치의 독자적 발전이 가능한 길을 열어가겠다는 약속과 10대 공약에서 제시한 무상교육과 의료. 무상교통, 전국민 4대보험,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주4일제, 지역 공공은행 등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노력과 능력을 입증하며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