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영수(領袖)

ai주식/주식ai : 우리글의 많은 단어가 그렇듯 산림(山林)도 복수의 뜻을 지닌다. 국어사전엔 ①산과 숲 ②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하지 않고 숨어 지내는 선비 ③절에서 불법을 공부하는 모임으로 적시돼 있다. 산림을 은둔하는 선비로 풀이했지만 실제 조선시대의 산림은 정치에 참여한 학파의 우두머리, 즉 영수였다. 산림은 학문적 권위와 사림(士林) 세력을 바탕으로 학계와 정계를 넘나들며 국정의 기본방향을 설계했다. 왕의 신임을 얻은 산림은 정치판의 얼개를 짜고 사림의 여론인 청의(淸議)를 공론화해 붕당정치를 이끌었다.

영수의 어원을 산림이 득세한 조선 중기에서 찾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파의 우두머리를 영수로 묘사한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송시열을 노론의 영수로, 윤증을 소론의 영수로 지칭했다. 영수(領袖)를 글자 그대로 옮기면 옷깃과 소매다. 때 잘 묻고 잘 닳고 남의 눈에 잘 띄는 부위란 의미로 우두머리란 뜻이다. 대통령(大統領)은 큰 줄기의 옷깃이니 우두머리 중 우두머리란 함의가 내재돼 있다. 하지만 영수는 권위주의 냄새를 풍기는 시대회귀적 언어이긴 하다.

협치의 시금석으로 여겨졌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은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의료 개혁을 제외하곤 평행선을 달렸다. 채 상병 특검법 등 여러 현안에 대한 양측의 간극이 크다는 방증이다. 그렇더라도 소통의 물꼬를 틔웠다는 의미는 있다. 정치 복원과 협치 구현은 이루어질까. 영수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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