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과 함께 피 흘리는 종교가 존경 받는다

ai주식/주식ai : 전두환 군부의 정치적 야욕이 커지던 1980년 3월 24일, 중남미 엘살바도르에서 로메로 대주교가 군사정권에게 학살당했다. 경상북도 크기에 550만 인구를 가진 엘살바도르에서는 14개 가문들이 대부분의 토지와 권력을 장악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백인 지배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군사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하여 싸웠다.

카지노 : 암살 시도 알면서도 기꺼이 순교 대비했던 로메로 대주교

살해되기 몇 주 전부터 로메로 대주교는 순교를 대비했다. 1980년 2월 생애 마지막 피정에서, 그는 상담 신부에게 고백했다. “폭력적인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곧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순교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로메로 대주교의 측근들은 조언했다.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이 제안하는 경호는 결코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정을 가지면 안 됩니다. 매번 같은 시간에 설교해도 안 됩니다. 혼자서 운전하지 마시고요.”

그런데도, 로메로 대주교는 작은 차를 손수 몰고 다녔다. 왜 혼자 운전하고 다니냐는 핀잔을 듣고, 그는 답했다. “제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친다면, 그때 혼자였으면 합니다. 저 혼자만 당했으면 합니다. 저로 인해 다른 누군가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는 자신의 사제직을 이렇게 해석했다. “사제인 저는 거룩한 계명에 따라,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심지어 저를 살해하려는 그 누군가를 위해서도 목숨을 바칠 의무가 있습니다. 순교는 제가 감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영광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저를 희생 제물로 받아주신다면, 제 피가 자유와 희망이 실현되는 데 필요한 씨앗이 되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 죽음이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의 자유를 위해 쓰이기를, 다가올 미래에 희망의 증거가 되기를 빕니다.“

다른 네 명의 엘살바도르 주교들은 전혀 탄압받지 않았는데, 왜 로메로 대주교만 박해 받았을까. 로메로의 설교에 답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 선택했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이유로, 교회가 박해받는 현실이 저는 기쁩니다. 교회가, 사제가, 교리교사가, 교회 단체가, 백성들의 학살에 함께 피 흘리고 희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회가 박해 받아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왜 박해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제들이 박해 받았거나 모든 교회 단체들이 박해받지는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헌신한 일부 사제와 단체들만 공격받고 박해 받았습니다.”

착한 양떼와 함께 하고자 했던 착한 목자

로메로 대주교에게 암살 경고는 더 늘어났다. 교황대사는 그에게 해외로 피신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살해되기 며칠 전 인터뷰에서 그는 유언을 남겼다.

“나는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부활하지 않는 영원한 죽음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를 죽인다 할지라도, 나는 엘살바도르 국민들 안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나는 암살자를 용서하고 축복한다고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주교 한 명이 죽을지라도, 교회와 국민은 죽지 않습니다.”

영화 <로메로>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성체를 들어올리는 장면에서 총을 맞았다. 그러나, 실제로 로메로 대주교는 설교 도중에 총을 맞았다.

“예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희생으로 자기 목숨을 내놓은 사람은 누구라도, 사라지는 씨앗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같이 자신의 몸과 피를 바쳐,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고 싶습니다.” 설교를 다 마치기도 전에, 62세의 로메로 대주교는 심장에 총탄을 맞았다.

며칠 후 장례미사가 산살바도르 대성당에서 열렸다. 로메로 대주교를 사사건건 방해했던 주교 네 명이 장례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가난한 백성들이 가로막았다. 성당 광장에 모인 추모객을 향해 군대와 경찰이 발포했고, 총을 피해 성당 안으로 밀려든 사람 등 약 40여명이 숨졌다. 장례미사에 참석했던 페루의 구티에레즈 신부 말처럼, 로메로 대주교 장례미사는 백성들의 고통과 투쟁 한복판에서 진행되었다.

로메로 대주교가 군사정권에 저항하고 싸우는 모습보다 나를 더 감동시킨 대목은 그의 회개 과정이었다. 미국 마이애미 해변에서 즐겁게 휴가를 보내고,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1977년 산살바도르 대교구 교구장이 되었을 때 군사정권이 환영했을 정도로 사회 정의에 관심 없었던 로메로 대주교는 대체 어떻게 회개하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이 로메로 대주교를 회개시켰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회개의 은총을 가난한 사람들이 전해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는 말했다. “이렇게 착한 양떼와 함께라면, 착한 목자 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화답했다. “이렇게 착한 목자와 함께라면, 착한 양떼 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주교로 살면서도 주님의 제자는 아닌 주교들

로메로 대주교는 또 말했다. “비록 제가 사막에서 홀로 외치는 목소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교회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나라를 뒤덮은 거대한 범죄와 폭력에 우리는 책임이 있습니다.”

40명이 넘는 한국 가톨릭 주교들 중에, 사막에서 홀로 외치는 목소리는 있는가. 우리나라를 덮고 있는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범죄와 폭력에 책임 느끼는 주교는 있는가. 한국 주교들은 순교를 남에게 설교하지 말고, 먼저 순교하라. 남에게 십자가를 설교하지 말고, 먼저 십자가를 져라. 주교로 살지만 주님의 제자는 아닌 주교들이 많은 현실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탄식하였다.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난동을 주교들은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주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똑바로 처신하라. 시민들이 성난 얼굴로 주교들을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